제주 여행 경비를 짜다 보면 유료 관광지 입장료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입장료와 주차비 모두 받지 않고 연중 내내 문을 여는 숨은 명소도 적지 않다.
제주 남서부 해안의 송악산 둘레길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독특한 화산 지형과 그 위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완만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두 가지 풍경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중 분화구와 바다가 만든 그림 같은 풍경
송악산은 겉보기와 달리 하나의 분화구가 아닌 이중 화산체라는 점이 특별하다. 지름 약 500m의 제1분화구 안에 깊이 69m에 달하는 제2분화구가 또렷하게 자리 잡고 있다.총 2.8km의 둘레길은 경사가 완만해 남녀노소 누구나 1시간 30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길을 걷는 내내 시야는 바다를 향해 열려있다.
전망대에 서면 바다 건너 형제섬은 물론, 날이 좋으면 가파도와 마라도, 멀리 한라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파노라마 경치가 펼쳐진다. 인근 마라도 정기선 승선장과 묶어 여행 일정을 짜기에도 좋다.
산책길 곳곳에 남은 그날의 상처, 동굴진지
감탄하며 걷던 길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해안 절벽 곳곳에 뚫린 인공 동굴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조성한 군사 시설이다.‘제주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진지’라는 이름으로 2006년 국가등록문화유산에 지정된 이 시설은 총 15기에 달한다. 태평양 전쟁 말기, 미군의 본토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만들어진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숨겨진 상처는 방문객들에게 제주의 또 다른 이면을 생각하게 만든다. 비용 부담 없이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송악산은 특별한 목적지가 된다.
박서우 기자 swoo@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