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K7은 왜 버렸나?
문제의 시작은 ‘K7’이라는 성공작을 스스로 버린 데 있다. K7은 감각적인 디자인과 합리적인 고급감으로 ‘스타일리시한 현실 드림카’라는 확실한 자리가 있었다. 그랜저와는 결이 다른, 자신만의 팬덤을 구축한 모델이었다.
하지만 K8은 이 차별화 대신, 그랜저를 잡겠다며 ‘더 크게, 더 비싸게’ 만드는 길을 택했다. 숫자가 8이 된다고 갑자기 프리미엄이 되진 않는다. 그랜저를 맹목적으로 쫓다가 K7만이 가졌던 젊고 세련된 감성까지 걷어차 버린 셈이다.
“눈만 즐겁다”... 5미터 거함의 속 빈 강정
K8이 내세운 5미터(전장 5,050mm)가 넘는 덩치와 12.3인치 커브드 디스플레이 같은 화려한 사양도 소용없었다. 정작 운전자가 매일 만지는 소재의 질감, 즉 ‘감성 품질’이 발목을 잡았다. “눈은 즐겁지만 손끝은 심심하다”는 오너들의 평가는 뼈아프다.
결정타는 ‘디자인의 방황’이었다. 기아의 새 시대를 열겠다던 얼굴이 “앞은 현대, 옆은 BMW, 뒤는 아우디”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그랜저를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기아다움’을 잃게 만든 전략적 실수였다. 40~50대 핵심 고객층마저 “그래서 이 차 정체가 뭔데?”라며 혼란스러워했다.
‘수직 램프’로 구원 등판... K7의 교훈 되새길까
K8의 부진은 이름이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일깨웠다. 소비자가 원한 건 ‘정체성’이었다.
최근 기아는 분위기 반전을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쏘렌토와 카니발에서 대성공을 거둔 ‘세로형 램프’ 디자인을 K8 페이스리프트 모델에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실내에도 최신 ccNC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얹어 상품성을 다듬는다.
이석호 기자 shlee@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