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무덤 양식과 거리가 멀어 처음 마주하는 이들은 묘지인지, 아니면 다른 용도의 건축물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이 기이한 모습 뒤에는 1000년 넘게 이어진 정체성 논쟁과 한 왕국의 마지막 역사가 얽혀있다.
가야 마지막 왕의 무덤이라는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승람’ 등 옛 문헌은 이곳을 가야의 마지막 군주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지목한다. 신라에 나라를 넘겨주기 전까지 11년간 나라를 다스렸던 왕의 안식처라는 것이다. 높이 7.15m에 달하는 석단은 크고 작은 돌들을 정교하게 맞물려 쌓아, 오랜 세월에도 견고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점도 눈에 띈다. 무덤 앞면은 7단의 석축이 온전히 드러나지만, 뒷면은 자연 능선에 기대어 있는 독특한 구조다. 이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발견되는 계단식 석릉(돌무덤)으로, 그 희소성이 크다.
왕릉이 아닌 제단이라는 주장도 팽팽하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곳이 무덤이 아닌 고대 종교 시설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무덤 정면에 놓인 4단 구조의 석조물이 불탑의 감실이나 제단 형태와 유사하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왕의 무덤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비석이나 주변 석물도 발견되지 않아 의문을 더한다.무덤 주변에는 가야 멸망기의 흔적을 품은 유적들이 남아있다. 구형왕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김유신 사대비와 왕이 머물렀던 수정궁 터에 지었다고 전해지는 왕산사지가 당시의 역사를 증언한다. 이처럼 기록과 실제 모습의 불일치는 구형왕릉을 둘러싼 논쟁을 더욱 뜨겁게 만든다.
이러한 역사적 논쟁을 뒤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도 부담이 없다. 대전통영고속도로 생초IC에서 화계 방면으로 진입하면 쉽게 닿을 수 있다. 차량 100대를 수용하는 넓은 주차장과 입장료 모두 무료다. 연중무휴로 개방되어 언제든 지리산의 정기 속에서 특별한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박서우 기자 swoo@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