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해발 1000m 고지, 절벽 위에 자리한 한 사찰이 이른 시간부터 등산객을 맞이한다. 입장료 없이 새벽 5시부터 문을 여는 운영 방식 덕분이다. 이른 아침 산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가 된다.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지금의 모습은 사실 100년에 가까운 기다림 끝에 찾아온 결과다. 한때 폐허로 남았던 이곳에는 긴 세월을 건너온 사연이 깃들어 있다.
100년의 공백, 다시 일어선 이유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된 대견사는 유서 깊은 도량이었지만 순탄한 역사를 보내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사찰은 강제로 폐사되는 아픔을 겪으며 오랜 시간 절터만 덩그러니 남았다.
긴 침묵을 깬 것은 21세기에 들어서다. 달성군과 조계종 동화사가 뜻을 모아 2011년 11월 재건 공사에 착수했다. 2014년 3월, 마침내 적멸보궁을 비롯한 4동의 전각이 완공되면서 천년 고찰은 약 97년 만에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법당에 불상이 없는 특별한 배경
새로 지은 전각 중 핵심은 적멸보궁이다. 이곳은 일반 법당과 구조가 다르다. 보통 법당 중앙에 자리 잡는 불상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불상이라는 형상을 통하지 않고 사리 본연의 상징성에 집중하는 공간이다. 이 때문에 참배객들은 더욱 깊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기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대견사의 신앙적 무게중심이 바로 이 적멸보궁에 있다.
건물보다 먼저 돌아온 천년의 보물
사실 전각들이 들어서기 한참 전부터 절터를 지켜온 존재가 있다. 바로 대견사지 삼층석탑이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이 석탑은 폐사 이후 흩어져 있던 것을 1988년 달성군이 수습해 복원했다.
석탑이 제자리를 찾은 뒤 26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주변 전각들이 들어선 셈이다. 현재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석탑은 사찰의 굴곡진 역사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상징물이다.
비슬산 자락에는 대견사 외에도 유가사, 용연사 등 함께 둘러볼 만한 고찰이 많다. 특히 봄에는 산 능선을 뒤덮는 참꽃 군락지가 분홍빛 장관을 이룬다. 다만 대견사로 향하는 운송편은 안개나 비바람 등 기상 상황에 따라 운행이 중단될 수 있으니 방문 전 확인은 필수다.
박서우 기자 swoo@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