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 으레 설악산이나 내장산 같은 유명 단풍 명소를 떠올린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산 전체를 뒤덮은 장관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말이면 몰려드는 인파에 밀려 단풍 구경이 아닌 사람 구경만 하고 돌아오기 십상이다. 조용한 곳에서 온전히 가을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줄 대안이 충주호와 청풍호 주변에 숨어있다. 바로 호수를 끼고 도는 ‘호반 산행’이다. 유명세는 덜하지만, 산과 물이 어우러진 단풍은 설악산 못지않은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핵심은 고도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수면과 맞닿은 지형의 돌출 각도와 능선의 배치가 시야의 개방감을 가르는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수억 톤의 물이 빚어낸 독특한 풍경 앞에서 해발고도는 숫자에 불과한 상황이 펼쳐진다.
해발고도보다 지형이 조망을 결정했다
월악산, 제비봉, 가은산이 대표적이다. 이 산들은 일반적인 산행과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단풍이 산꼭대기에서 아래로 하루 약 20에서 25미터씩 내려앉는 자연의 순리를 고려하면, 호수와 맞닿은 다양한 고도의 능선은 더 오랜 기간 다채로운 색의 향연을 펼쳐낸다.그중에서도 월악산 최고봉인 영봉(1,097m)은 고고한 암봉의 웅장함을 자랑한다. 1984년 12월 3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악산은 총면적 287.571㎢에 달하며, 자락에는 덕주사와 신륵사를 비롯해 덕주마애불 같은 깊은 역사적 자취가 숨겨져 있다.
호수와 맞닿은 암릉이 절경을 뽐냈다
단양 제비봉(721m)은 호반 산행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으로 꼽힌다. 충주호 수면과 직벽에 가까운 암릉이 가파르게 마주 닿아 있어, 오르는 내내 아찔하면서도 시원한 조망을 선사한다.능선에 서면 발아래로 펼쳐지는 충주호의 푸른 물결이 단풍과 어우러져 시선을 압도한다. 여기에 단양팔경에 속하는 구담봉(330m)과 옥순봉(286m)까지 한눈에 들어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완성한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에서 바라보는 제비봉의 모습 또한 별미다.
연봉에 둘러싸여 아늑함을 더했다
제천 가은산(575m)은 상대적으로 높이가 낮지만 결코 풍경이 단조롭지 않다. 금수산과 말목산 능선이 갈라지는 802미터봉 남서쪽에 자리해, 주변 연봉들이 병풍처럼 산을 감싸 안은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이러한 지형 덕분에 화려한 암릉을 타는 산행의 재미와 아기자기한 숲길을 걷는 즐거움이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사방이 사봉, 용두산, 황정산 등 굵직한 산봉우리들로 에워싸여 있어 아늑하면서도 꽉 찬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평가다.
월악산국립공원은 별도의 입장료 없이 상시 개방된다. 다만 기상 악화 시 입산이 통제될 수 있어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하다. 제비봉 탐방의 거점인 장회나루(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월악로 3811-19)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주차가 가능하다.
박서우 기자 swoo@news-wa.com
